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표트르 크로포트킨 (문단 편집) == 개요 == [[러시아 제국]]의 [[철학자]], [[과학자]], [[지리학]]자이자 [[아나키스트]]. 가명은 '보로딘(Бороди́н)'이었으며, 영어권에서는 '피터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으로 활동했다. [[미하일 바쿠닌]] 이후, 19세기 [[아나키즘]] 운동을 대표했던 인물로, 당시 서유럽에서 널리 인정받던 [[허버트 스펜서]]의 [[적자생존|적자생존론]]에 반기를 들고 "모든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상호부조론을 발표해 크게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20세기 초반 [[독립운동가]] [[신채호]]를 통해 아나키스트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다. 크로포트킨처럼 여러 계층에서 활약하고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황궁의 가장무도회에서 호화로운 옷을 입고 [[니콜라이 1세|니콜라이 황제]] 곁에 서 있거나, [[알렉산드르 2세|알렉산드르 황제]]를 호위하는 근위 시종으로서 뒤따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무서운 감옥 안에서 황제의 동생 니콜라이 대공의 자백유도를 거절하고는 그를 내쫓기도 하고, 바로 발밑 독방에 감금되어 있는 사람이 미쳐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는 관료이기도 했고, 과학자이기도 했으며, 어떨 때는 미지의 땅을 탐험하는 탐험가였다가, 어떨 때는 박해받는 가난한 혁명가이기도 했다. 그는 거대한 저택에 남부럽지 않는 귀족이었지만, 망명자가 되어 돈이 없어 차와 빵만으로 산 적이 많았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한 크로포트킨은 혁명가의 삶을 살면서도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평생을 스스로 희생하며 살았다. 그는 결코 복수자가 아니었으며 언제나 순교자였다. 그는 그러한 희생을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게오르크 브란데스가 크로포트킨을 평가하면서 말한 대목. (『크로포트킨 자서전』 p.2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